어떤 개발자의 3년 치 회고록

allocProc
8 min readMay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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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에 접어드는 백엔드 개발자가 이제서야 적어 보는 지난 3년. 남들은 일 년에도 몇 번씩이나 적는 회고를 난 한 글자도 쓸 생각 못하고 지내다가 뒤늦게 잠깐이나마 뒤를 돌아보며 적는 글.

TL;DR

  • 대학교 4학년, 안드로이드 개발 인턴으로 스타트업 입사
  • 정직원 전환 & 백엔드 개발자로 전향
  • 3년동안 뭔가를 했다.
  • 첫 이직

이제 안드로이드 개발은 안해야지. 센디라는 스타트업에서 반년 정도의 안드로이드 개발 인턴 근무를 마무리할 즈음에 든 생각이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참 많은걸 배웠다. 내가 지금 개발자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의 대부분을 이 때 다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가치있는 경험이었다. 운좋게 좋은 회사에서 운좋게 좋은 스승을 만나 아직 학생의 신분인 나에게는 과분할만큼 많은 걸 배웠다.

4학년, 인턴

21년 1월 센디에서의 안드로이드 개발 인턴 생활을 마무리했다. 곧바로 안드로이드 개발자 포지션 정직원 제안을 받았다. 너무 감사한 제안이다. 2월이면 대학 졸업장도 받으니 타이밍 또한 너무 좋다.

하지만 거절했다. 대학교 4학년을 학업과 인턴을 병행하느라 너무 정신없이 보내면서 졸업 후의 내 인생과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짧은 고민으로 제안을 덜컥 수락하기가 너무 무서웠다.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는게 맞을까, 그리고 그 시작 장소가 여기여도 될까.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제안을 일단 거절했다. 그 후 한 달 정도를 지난 학부 생활과 인턴 생활을 돌이켜보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함께 보냈다. 고민의 끝은 명확했다.

“백엔드 개발자를 해야겠다.”

고민의 결론이 좀 황당하다. 이유는 이렇다. 기껏해야 안드로이드 개발만 이제 겨우 1년정도(그것도 인턴으로) 해본 신입 개발자가 안드로이드 개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어떻게 그렇게 뭣도 모르면서 성급하게 생각했나 싶다. 그저 백엔드 개발자가 멋있어보였던 건 아닐까.

가진건 따끈따끈한 컴퓨터공학부 졸업장과 안드로이드 개발 인턴 경력과 짜잘한 사이드 프로젝트 뿐인 24살을 어느 정신나간 회사가 백엔드 개발자로 채용해줄까. 그런 회사는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있다면 딱 하나정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연락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혹시 저를 백엔드 개발자로 채용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2021 — 첫 단추

그렇게 내 커리어의 첫 단추를 끼웠다. 21년 3월 백엔드 개발자로 센디라는 스타트업에서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솔직히 후회했다.

백엔드 개발에 필요한 지식들(프레임워크, DB, 언어, 인프라, 아키텍처, etc)이 전무한 상태로 일단 자리에 앉아버렸고 이걸 한꺼번에 급하게 배우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물론 회사에서 그 누구도 나한테 업무 관련해서 압박을 가한 적 없다. (유일한 백엔드 사수분이 계신데 오히려 항상 괜찮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천사다.) 그런데 백엔드 개발자로서 당장 퍼포먼스를 전혀 못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있자니 내가 속에서 열불이 났다. 미칠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1인분을 하고싶어서 퇴근 후 저녁시간이나 주말은 없다고 생각하고 공부만 했다. 이 생활을 한 반년정도 하고 나니 서서히 적응도 되고 백엔드의 전반적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큰 도움 없이 백엔드의 자잘한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정도가 된게 반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던 것 같다. 3월에 입사했는데 연말이나 되어서야 1인분 할랑 말랑하는 백엔드 개발자가 됐다. 이제야 백엔드 개발자로서 자긍심이 조금 올라왔다.

2022 — 이제야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로서 본격적으로 업무에 몰입을 시작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개발 지식과 도메인 지식이 어느 정도 갖춰지니 일에 속도와 몰입감이 더해진 것은 물론이고 내가 지금 뭘 해야할지,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게 좋을지 내가 먼저 판단하고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일이 손에 익은 것 보다 누가 뭐라고 안해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게 참 기뻤다.

센디 백엔드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를 해결했다. 정말 많은 신규 비즈니스 로직을 만들었고 레거시는 고쳐쓰거나 덜어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업들이 몇 개 있다. 기억에 남은 이유가 뿌듯해서인지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코딩하고 회의하고 하던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다. 그 기억들 중 하나는 ‘실시간 위치’ 이다.

회사가 몸담고 있는 도메인이 ‘물류’이고 조금 더 정확히는 ‘용달’이다보니 기사님들의 위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조금씩 있다. 이 위치 데이터를 활용해서 개발한 기능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기능이 위 사진에서 보이는 ‘기사님 실시간 위치 제공’ 기능이다. 기능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간단하다. 내 짐을 옮겨주는 기사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어디로 가고 계시는지 볼 수 있는 기능이다. 이 간단한 기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말 많은 고민의 연속이었고 훌륭한 팀원들이 없었다면 끝까지 만들어내지 못했을거다.😭 기술적인 고민은 물론이고 제품 수준의 고민과 실사용 테스트까지 긴 기간동안 열심히 만든 기능이라 뿌듯하고 애착이 많이 간다. 그 과정을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어서 참 아쉽다.

사실 뭐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작업이야 너무 많지만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 글이 이 페이지 하나론 부족할 것 같아서 해결했던 문제들에 대한 기억은 이거 하나로 마무리 지어야겠다. 다 적더라도 그리 재밌게 읽을 만한 글은 아닐거다.

그리고 처음으로 코드리뷰 문화를 잡아나간 것도 이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 개발팀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고 내가 입사할 때는 이렇다 할 개발팀의 문화가 없었다. 우리 팀에 맞는, 우리 팀의 능률을 상승시켜 줄 수 있는, 우리만의 문화는 있어야했고 그 중 가장 급했던게 코드리뷰였다. 다른 큰 회사들의 코드리뷰에 관한 글을 정말 많이 읽어봤다. 하나하나 우리한테 적용시켜보면서 우리에겐 어떤 옷이 맞는지 입어보고 안맞으면 벗었다. 그렇게 서로 논의해가면서 우리만의 리뷰 문화를 정착시켰고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여러가지 다른 문화도 만들어 나갔다. 좋은 문화가 밑거름이 되어 단단하면서도 풍요로운 팀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처음으로 스터디도 만들어봤는데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고 팀에도 각자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첫 스터디 이후로 여러가지 스터디가 많이 만들어져 진작 만들어볼걸 싶었다.

22년은 이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아마 22년 끝자락이었던 것 같다 이직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던 시점이.

2023 — 둥지를 떠나기

3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센디에서 개발자로서 나름 잘 성장했다. 운도 좋았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더 성장하고 싶었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다. 그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는지 궁금했다. 규모가 작은 곳에만 있다보니 이런 궁금증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했다. 위에 나열한 내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 법한 곳들로 알아보고 준비했다. 난 이직을 남들처럼 단기간에 빡세게 준비한 뒤 이력서 많이 넣고 면접을 하루에 두세 개씩 몇 주에 걸쳐서 보는 그런 식으로는 할 자신이 없었다. 이직하신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렇게 하시던데 정말정말 존경스럽다. 그래서 난 많아야 한 달에 하나씩 지원해 보면서 정말 천천히 준비했다. 이직 준비 초반에 지원했던 곳들은 사실 면접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지원해 보기도 했다. 이직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면접을 꽤 봤는데 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이 회사는 면접을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구나, 오 이런 것도 여쭤보시는구나, 아 난 이런 부분에 정말 약하구나, 모르는게 많구나. 면접을 여러 번 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도 정말 많고 면접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면접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근데 면접을 아무리 봐도 면접때만 느낄 수 있는 그 떨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더라.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서 23년 말에 이직에 성공했다!

그동안 뭘 배웠나?

3년 동안 정확히 어떻게 성장했고 그동안 뭘 배웠나?
개발자로서 역량도 정말 많이 발전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조금씩 계속 나아져왔다. 뭐 속도가 그리 중요할까 앞으로 가면 된거지. 그리고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센디에서의 3년도 그랬던 것 같다. 단순히 개발자로서 역량을 기른걸 떠나서 나를 많이 알 수 있었다. 난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나의 내적동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어떤 공부방식이 나에게 맞는지, 내가 일하는 방식, 나에게 맞는 방식은 뭔지 조금은 알게됐다. 그리고 좋은 소통은 뭔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방식은 어떤지, 좋은 리더란 어떤 모습인지, 좋은 팀은 어떤 모습일지 등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2024

24년은 얘기할 게 딱히 없다. 올해부터 네이버라는 회사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네이버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많지만 그건 다음 회고에서 다뤄보자. 다음 회고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올해 안에는 쓰는게 좋겠다.

난생처음 회고 글을 써봤다. 이제 다들 왜 회고 글을 써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한 번쯤 뒤를 돌아보고 자칫 희미해질 뻔했던 소중한 경험들을 되새기고 또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는 건 큰 가치가 있다. 3년 치 회고라 이미 어렴풋해져 버린 기억들이 많고 글에는 생략되어 버린 내용들이 많은 게 안타깝다. 진작 써볼걸 그랬다.

앞으로는 자주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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